영원의 언어들(Languages of Eternity; Continuity)
2025.8.20-2025.9.21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흘러가는 세상에서 영원한 무언가를 바라는 일은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발상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여전히 오랫동안 지켜내고 싶은 무형의 가치들이 있다.
형태가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언어적 설명의 한계에 금방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게다가 언어는 시간이 흐르며 의미가 퇴색되거나 혹은 더욱 고착화되기도 하니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의미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다. 언어의 이러한 불완전함은 영원의 시간선에서 아주 미세하고 일시적인 변화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포착하고 매어 둠으로써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자 하는 본능적 욕망을 품는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불완전한 것을 붙잡기 위해 실체를 가진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체로서의 예술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특정한 형태로 창조하는 과정이자 규격화하는 프레임이며 일상의 일시정지 상태다. 그러나 이 실체는 삶의 맥락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못하는 일종의 언어로, 기록될 때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예술은 후대로 대물림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연속성을 획득한다. 이것이 바로 예술과 연속성이 지닌 불가분의 관계에 대한 정의다. 하지만 이때의 연쇄작용이 단지 작가(개인)와 감상자(개인)의 일대일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개인과 시대, 시대와 사회, 그리고 사회와 개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는 상태가 이어지며 보다 포괄적인 측면에서의 연결이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작품을 보았을 때 그것이 지닌 조형적 아름다움이나 피상적 특징에 의거해 가치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작가가 살아온 궤적이 미술품과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더욱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광영, 우국원 그리고 남춘모의 작품은 타당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