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이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취급될 수 있는 건 아마 기술 이상의 무언가, 즉 고유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오랜 시간 동안 예술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요즘은 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고유하다고 믿어왔던 예술의 성질이 위협받고 있다.
어렸을 적 막연히 미래를 상상하면 기술의 발전이 많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겠지만 예술가만큼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교육받아 왔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일상은 전혀 예상과 다르다. 인간의 신체노동이 기계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기계가 머리를 담당하고, 인간이 손발로 전락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장 햄버거 가게만 가도, 인간이 주문을 받고 기계가 햄버거를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현실이지 않은가. 물론 모든 상상이 현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변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다. 그리고 ‘머리’가 되는 이 기술은 단지 신체노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고유한 행위라고 여겨졌던 예술 또한 AI에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오게 된 것은 2022년이었다. 2022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전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한 작품이 사실은 생성형 AI인 ‘미드저니’로 만든 그림이라는 사실이 우승자 본인에 의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AI가 인간을 이기는 사례는 많았지만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믿었던 예술이 기술에 의해 패배하는 것을 모두가 목도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우리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논란의 핵심은 AI가 0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작품을 학습하고 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는 데 있다. 즉, AI가 생성한 이미지라고 할지라도 순수한 AI의 산물이 아닌, 인간이 만든 이미지를 통해 도출되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AI 창작물에는 늘 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뒤따라온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떨까.

Rembrandt van Rijn, Self-Portrait, 1659.
저작권은 저작권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나면 소멸된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17세기의 화가로, 21세기인 지금 저작권이 완전히 소멸되어 있는 덕에 Artvee와 같은 미술품 이미지 검색 웹사이트에서 그의 작품 사진을 자유롭게 찾아볼 수 있다. 202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일부가 손상된 렘브란트의 작품을 AI 기술로 복원해 대중에 공개했다. 기법마저 학습한 AI는 사라진 부분을 마치 렘브란트가 직접 그린 것처럼 정교하게 재현해 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AI를 활용한 예술이 절대악처럼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손상되거나 소실된 명화들을 복원할 수 있는 현시점 최고의 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AI를 활용한 작품에 관한 논란, 그 쟁점은 결국 저작권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일까.
미술학도라면 한 번쯤은 누군가의 작품을 모사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품을 따라 그리면서 작가의 기법과 감각을 몸으로 익히는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AI가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해 수많은 작품을 ‘학습’하는 것도 이런 맥락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신기술의 등장이 사회적 약속으로 이어지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AI와 예술의 관계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창작’의 정의를 다시 쓰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다른 문제다. 과연 예술의 본질은 저작권에 있는가,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에 있는가.
예술이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취급될 수 있는 건 아마 기술 이상의 무언가, 즉 고유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오랜 시간 동안 예술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요즘은 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고유하다고 믿어왔던 예술의 성질이 위협받고 있다.
어렸을 적 막연히 미래를 상상하면 기술의 발전이 많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겠지만 예술가만큼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교육받아 왔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일상은 전혀 예상과 다르다. 인간의 신체노동이 기계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기계가 머리를 담당하고, 인간이 손발로 전락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장 햄버거 가게만 가도, 인간이 주문을 받고 기계가 햄버거를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현실이지 않은가. 물론 모든 상상이 현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변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다. 그리고 ‘머리’가 되는 이 기술은 단지 신체노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고유한 행위라고 여겨졌던 예술 또한 AI에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오게 된 것은 2022년이었다. 2022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전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한 작품이 사실은 생성형 AI인 ‘미드저니’로 만든 그림이라는 사실이 우승자 본인에 의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AI가 인간을 이기는 사례는 많았지만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믿었던 예술이 기술에 의해 패배하는 것을 모두가 목도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우리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논란의 핵심은 AI가 0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작품을 학습하고 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는 데 있다. 즉, AI가 생성한 이미지라고 할지라도 순수한 AI의 산물이 아닌, 인간이 만든 이미지를 통해 도출되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AI 창작물에는 늘 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뒤따라온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떨까.
Rembrandt van Rijn, Self-Portrait, 1659.
저작권은 저작권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나면 소멸된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17세기의 화가로, 21세기인 지금 저작권이 완전히 소멸되어 있는 덕에 Artvee와 같은 미술품 이미지 검색 웹사이트에서 그의 작품 사진을 자유롭게 찾아볼 수 있다. 202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일부가 손상된 렘브란트의 작품을 AI 기술로 복원해 대중에 공개했다. 기법마저 학습한 AI는 사라진 부분을 마치 렘브란트가 직접 그린 것처럼 정교하게 재현해 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AI를 활용한 예술이 절대악처럼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손상되거나 소실된 명화들을 복원할 수 있는 현시점 최고의 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AI를 활용한 작품에 관한 논란, 그 쟁점은 결국 저작권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일까.
미술학도라면 한 번쯤은 누군가의 작품을 모사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작품을 따라 그리면서 작가의 기법과 감각을 몸으로 익히는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AI가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해 수많은 작품을 ‘학습’하는 것도 이런 맥락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신기술의 등장이 사회적 약속으로 이어지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AI와 예술의 관계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창작’의 정의를 다시 쓰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다른 문제다. 과연 예술의 본질은 저작권에 있는가,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에 있는가.